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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道)는 자유로움이다 |
| 법회명 : 일요법회 |
법 사 : 법산스님 |
법회일자 : 2005-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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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下數椽茅屋 (송하수연모옥) 소나무 아래 서까래 매어 띠집을 짖고
眼前四面靑山 (안전사면청산) 눈을 둘러 사방보니 짙푸른 산이로다.
日月升沈不住 (일월승침부주) 해와 달이 뜨고 지며 머무름 없고
白雲來去常閑 (백운래거상한) 힌 구름 오고 감에 언제나 한가롭네.
이 시는 스님의 마음이 그만큼 한가롭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시이다. 제아무리 큰 집에 산다 하더라도, 또는 작은집에 산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한가롭고 자연스러워야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 걸림이 많고 몸에 제약이 많으면 불편하고 초조하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하였다. 도는 자연에 있는 것이다. 도를 구함은 자유롭기 위해서 이다. 자유가 없는 것은 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리라고 하는 것은 걸림이 없고 구속이 없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항상 고통과 어려움과 괴로움이 뒤따르기 때문에 이로부터 벗어나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공부도 하는 것이다. 가끔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여러분들이 학문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학문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얼마만큼 자유롭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극락이라고 하는 정토세계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 내일의 우리 삶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학문을 하는 것이다. 편안해지기 위해서 하는 학문이므로 남을 비방하거나, 욕하거나, 이간질 시키고 싸우거나 투쟁해서는 되질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 경전에서는 조금도 남의 목숨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하여 남의 인격을 존중하라 하였고, 남의 재산권을 보호함으로 인해 나의 삶이 온전해 지기 때문에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하였고, 세상의 모든 도덕성을 가지고 청결히 살기 위해서 서로 모욕적인 것을 주지 않는 불사음을 실천하라 하였으며, 남을 욕하고 비방하고 헐뜯고 이간질시키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계율들은 그렇게 참다운 의식을 가짐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항상 남들로부터 비방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남들로부터 칭찬의 대상이 되고, 선망의 대상이 되고,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자면 남에게 사랑과 아낌을 베풀어 주고 남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남을 소중히 여길 때에 베풀어 줄 수 있게 된다.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에는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베풀기가 힘들다. 주고 싶지 않은 이에게 줄 때 또 받고 싶지 않은 이에게 받았을 때도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주는 이와 받는 이가 서로 마음이 즐겁다면 주고 받음에 자유롭고 비로소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해탈을 추구하라고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편안해 지게 하기 위해서 이다. 요즈음 낙엽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나무가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인데, 겨울이 다가오면 잎사귀와 줄기에 있던 수분을 모두 뿌리쪽으로 내려서 발산을 하게 된다. 만약 그러지 않고 수분을 가지고 있으면 겨울에 얼어서 죽게 될 것이다. 또한 수분이 없어진 나뭇가지는 딱딱하게 말라서 잘 부러지지만 쉽게 얼지는 않는다. 쉽게 말하자면 나무전체의 기운을 뿌리쪽으로 모으고 겨울잠을 자는 것이다. 가지치기를 겨울에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겨울에 해야만 나무가 아픔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나무가 겨울잠을 자는 것과 우리가 밤에 잠을 자는 것은 흡사하다. 잠을 잘 때에는 불을 끄고 어둡게 해서 자야한다고 한다. 훤한 곳에서 잠을 자면 잠이 깊이 들지않고 꿈을 많이 꾸게 된다. 한숨을 자더라도 꿈이 없이 가뿐하게 자야 한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할 때에는 기도나 참선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무가 겨울잠을 자기위해 뿌리에 기운을 둔다는 것은 심일경(心一境),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서 일체 망상을 떠오르지 말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에 티벳의 수미산으로 순례를 다녀왔는데, 도중 넘어져 팔목을 다치게 되었다. 처음엔 손목이 삐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응급치료만 했었는데 돌아와서 보니 부러진 것이었다. 손목이 부러졌음에도 크게 아픔을 느끼지 않고 순례길을 마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험하기 그지없고 열악하디 열악한 그곳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바로 그곳에서 수행을 했던 것이다.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춥고 배고픔에 도의 마음이 일어난다고 했다. 옛날에는 더 춥고 환경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추운지도 모르겠고 고통스러운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만큼 수미산은 좋은 곳이었다. 예전 밀라델빠 스님이 수행을 하고 수미산을 오를 때에 오르다 보니 옷이 다 벗겨졌다고 한다. 그 말은 기도하며 산을 오르면서 모든 번뇌망상이 전부 쇠락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아픔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은 수행이라 할 것이다. 티벳은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그곳의 사람들은 얼굴이 밝고 표정이 아주 좋다. 행복이라는 것은 돈이 많고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다 한다. 행복지수는 물가지수나 경제지수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경제지수는 미국이나 유럽쪽이 높지만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히말라야산맥의 부탄이라 한다. 부탄은 티벳인들이 만든 나라로 티벳불교를 수행하고 있는 나라이다. 가난한 나라이지만 행복하다는 것이다. 옛날 걱정도 많고 근심도 많던 한 부자가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아래에서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부자가 내려다 보니 거지들이 빌어온 밥을 나누어 먹으면서 행복해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부자는 ‘세상 사람들이 부자라 해서 편한 것만은 아니구나, 집도 없는 저들이 행복하게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라고 생각 하였다. 물질이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고 하지만 물질의 풍요가 인간에게 고통을 주었으면 주었지 인간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전에서는 처자권속이 그물이고, 재산은 짐이며, 집은 감옥이라 하였다. 실제로 감옥이라 생각하면 감옥이 되는 것이고, 짐이라 생각하면 짐이 되며, 그물이라 생각하면 그물이 되는 것이다. 가족끼리 서로 위하고 아끼고 사랑하면서 편안하다면 그보다 더 좋은 도반은 없을 것이다. 재물이 많아도 더불어 나누어 즐거울 수 있다면 더 좋은 재물은 없을 것이며, 집도 누구던지 편안히 드나들고 즐거울 수 있는 집이라면 잠그고 있더라도 어찌 감옥이 될 수 있겠는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대방광불 화엄경이 80권으로 4억자(字)정도 된다. 그곳에는 세상사 온갖 것이 다 들어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 한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일심소관(一心所關)인 것이다. 절에 와서 종치는 법을 배울 때에 가르쳐 주시는데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파지옥진언 나모 아다 시지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옴 아자나 바바시 지리지리 훔… 과거 현재 부처님을 알고자 하거든 자연의 이치를 잘 살피도록 하라,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것이니라. 위의 사구계는 팔만대장경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구절이다. 이 마음이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한가로우면 통제가 잘 되지만 마음이 분주하면 통제가 되질 않는다. 앞서 소개한 시에서 스님의 한가로움은 모든 육체와 정신적인 고뇌와 번뇌를 이길 수 있는 수행을 했기 때문에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불교를 하는 것은 마음을 쉬기 위함이다.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고 산만한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다. 금강경의 내용을 보면 마음을 쉬게하는 가르침이 많이 나온다. 가을이 되어 가랑잎을 보면 가랑잎이 바람을 타고 날기도 하고 땅으로 기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은 날지도 못하고 기기도 힘들다. 설사 가랑잎이 바람을 타고 날다 어딘가에 부딪혀서 부서지더라도 본래 데로 돌아가는 묘미를 잘 알고 있는데, 인간도 결국 부셔져서 지수화풍으로 흩어져 흔적이 없는 본래 면목으로 돌아갈 것인데, 무엇을 집착하고 누구와 시비하면서 아옹다옹 살아야 하는가. 인간이 이 세상의 생명 가운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제일 불쌍한 것이 인간이로구나 생각해보았다. 여러분들도 한가한 마음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면 설사 오늘 좀 가난하더라도 마음이 편안한 것이 행복이므로 부처님의 그 해탈의 길을 열심히 기도로 정진해 가면서 삶을 아름답게 꾸며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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