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독송시간이 영겁과 통한다
    이 름 : 김 영미 등록일 : 201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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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의 50년이라야
사천왕의 하루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사천왕의 하루에서
30일을 한 달로 하고,
열 두 달을 일 년으로 해서,
500년 한 것이 사천왕의 수명이다.

인간의 100년이 도리천의 하루다.
이 도리천의 하루에서
30일을 한 달로 하고,
열 두 달을 일 년으로 해서,
1,000년 한 것이 도리천의 수명이다.

인간의 200년이 염마천의 하루다.
이 염마천의 하루에서
30일을 한 달로 하고,
열 두 달을 일 년으로 해서,
2,000년 한 것이 염마천의 수명이다.

인간의 400년이 도솔천의 하루다.
이 도솔천의 하루에서
30일을 한 달로 하고,
열 두 달을 일 년으로 해서,
4,000년 한 것이 도솔천의 수명이다.

인간의 800년이 화락천의 하루다.
이 화락천의 하루에서
30일을 한 달로 하고,
열 두 달을 일 년으로 해서,
8,000년 한 것이 화락천의 수명이다.

다시 인간의 1,600년이 타화락천의 하루다.
이 타화락천의 하루에서
30일을 한 달로 하고,
열 두 달을 일 년으로 해서,
16,000년 한 것이 타화락천의 수명이다.

[중아함경]

우리가 100년도 안 되는 인생을
온갖 욕심 부리고, 돈 벌고, 좋은 집 사고, 땅 사고,
투기 하고, 남들보다 더 잘 살려고 아둥 바둥 해 봐야
그게 사천왕의 이틀 밖에 안 되고,
도리천의 하루도 안 되며,
염마천의 12시간도 안 되고,
도솔천의 6시간, 화락천의 3시간,
타화락천의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일 뿐이다.

하늘 세계에 있다가 인간으로 윤회를 하여 내려왔더라도
일평생을 아웅다웅하며 온갖 욕심 채우고 살다 돌아가면
그것이 타화락천에서는 1시간 정도 잠시
산책 다녀 온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일평생이 어찌 생각해 보면 잠시 잠깐이고,
또 길게 느낀다면 무한히도 긴 시간이다.
시간이라는 것이 이처럼
고정된 실체나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심리적인 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환상일 뿐이다.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에 따라 제 스스로 만들어 놓은
제각기 상대적인 시간의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는 일평생이 찰나와도 같을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일평생이 억겁과도 같이 길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시간이란,
내게 주어진 생이란,
사실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생생하게 '지금 이 순간'을
깨어있는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 시간을 기도와 명상으로 온전히 깨어있게 존재했다면
그 사람에게 한 시간은
지난 영겁의 업장을 씻고
깨달음을 씨앗을 뿌려 다 거두어 수확까지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적인 시간관에서는
'돈오'라는 말이 가능한 것이다.
지난 억겁의 업장을 닦고 무명을 닦기 위해
시간적으로 무량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닦고 닦아 많은 세월을 수행해야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박에라도
그 순간을 온전히 집중과 깨어있음으로 존재했다면
깨달음의 빛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게는 단박이라고 느낄지라도
법계의 시간에서는 영겁을 다 담아낼 수도 녹여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인류의 스승, 스님들께서는
'지금 이 순간'을 생의 전부로 알고
그 순간에 내 온 존재를 쏟아 부어 정진하라고 한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은 단순한 '짧은 어느 순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이 무량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한 시간 깨어있는 순간을 보내는 것은,
지금 '금강경'을 독경하는 시간은,
지금 잠시 마음을 관하는 순간은,
바로 영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무량수의 시간을 가꾸는 순간이다.

그러니 하루의 바쁜 시간 가운데에서라도
잠시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마음을 관하고,
금강경을 독송하고, 염불을 하고, 수행에 들 일이다.

우리의 하루로 보자면 잠시 잠깐의 시간일 수 있지만,
그 수행의 시간이,
무량수 부처님의 시선에서는
무량한 수명의 시간을 닦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루 종일을, 아니 일평생을,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보냈다면,
빈둥빈둥 놀며 보냈다면,
산더미같은 일의 늪에 빠져 깨어있지 못하고 보냈다면,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남들보다 잘 살아볼까,
나를 내세워볼까 하는 아상으로 보냈다면,
그 수많은 세월을 보내는 것이
온전히 깨어있는 보살의 '찰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백년을 살더라도
어리석은 중생으로 깨어있지 못한 채 사는 것 보다
비록 단 10분을 보내더라도
깨어있는 정진으로 사는 것이
법계의 세계에서는 더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이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비록 백년을 살더라도
계명을 깨뜨리고 마음의 고요를 잃는다면,
바르게 행하며 마음의 고요를 지니고
단 하루 사는 편이 더 낫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지혜롭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다면,
지혜롭고 고요한 마음으로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나고 죽는 이치를 모른다면,
나고 죽는 이치를 알고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죽음이 없는 도를 모른다면,
죽음이 없는 도(열반)를 알고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가장 높은 진리를 모른다면,
가장 높은 진리를 알고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내 삶에서 금강경 1독 하는 시간이,
잠시 마음을 관하는 시간이,
염불하고, 참선하며, 경전을 독송하는 수행의 시간이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은 어리석게 사는 수백생의 삶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다.

하물며 100일 동안 금강경을 독송하고,
몇 번이고 하루에 금강경을 펴고 독송 정진하는 시간이라면
그 찰나 찰나가 모여, 그 정진의 기운이 모여
우리의 삶을 얼마나 깨어있고 아름다우며 평화롭게 바꾸겠는가.

금강경을 독송하는 바로 그 시간,
바로 그 짧은 시간이
법계의 시간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몸 받은 일평생의 세월보다, 백 년의 세월보다
더 값진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그런 정신으로
금강경에 내 삶의 모든 공경심과 집중의 마음을 담아
정진에 정진을 해 나갑시다.(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