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명법문- 참마음 일으켜 우리도 부처님처럼{회주 정우큰스님}
    이 름 : 이보현 등록일 : 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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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스님.  1968년 통도사에서 홍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와 불교텔레비전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해인사 승가대학 총동문회장, 서울 강남사암연합회 회장, 홍법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맡고 있으며 서울 구룡사,여래사 회주로서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스님은 특히 구룡사, 여래사, 원각사, 법계사, 반야사 등 국내외에 20여 개의 포교당을 창건해 대중포교에 진력하고 있다. 살아 있는 명법문 - 참마음 일으켜 우리도 부처님처럼 산과 들에는 꽃들이 많이 피었습니다. 벌써 꽃망울을 터트린 뒤 지는 꽃도 있고, 이제 막 꽃대를 올리고 있는 꽃들도 있습니다. 그 꽃을 바라보면서 불현듯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큰 사랑과 자비심으로 마음을 두드려도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이 굳게 닫혀 있으면 소용이 없겠구나.” 꽃들이 아무리 예쁘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봐달라고 해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 번거로우면, 꽃이 꽃으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그 마음을 먼저 가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는 우리시대의 ‘선지식善知識’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의 중생을 구제하시기 위해서 몸을 나투신 사월초파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때가 되면 사찰에서는 부처님께 공양 올릴 연등을 만들면서 부처님오신날까지 하루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보내곤 합니다. 그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인류에 자비와 평등의 세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몸을 나투신 거룩하신 성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설렘과 희망으로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고 있는 모든 불자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모습일까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불자들이여, 선지식善知識이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菩薩과 벽지불僻支佛과 성문聲聞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이니라. 어찌해서 선지식이라 하는가. 선지식은 중생들을 교화敎化하여 열 가지 나쁜 짓을 여의고 열 가지 선업을 닦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에서 선지식을 ‘스스로 10악업十惡業을 짓지 아니하고 10선업十善業을 닦으며 법대로 말하고 말 한대로 행하는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10악업이라는 것은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으로 짓는 일들을 말합니다. 즉 몸으로 짓는 업業인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입으로 짓는 업業인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마음으로 짓는 업業인 탐애貪愛, 진애瞋碍, 치암癡暗의 업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10선업善業은 무엇이겠습니까? 살생하지 아니하고 방생放生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아니하고 베풀며, 사음하지 아니하고 청정淸淨함을 드러내고, 망어, 기어, 양설, 악구하지 아니하고 진실한 말을 하고, 실다운 말을 하고, 말 같은 말을 하고, 나쁜 소리 하지 않고,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하지 않으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는 것을 말합니다. 슈바이처 박사도『수행론』이라는 책에서 “나는 한 잎사귀라도 의미 없이는 뜯지 않았다. 한 포기의 들꽃도 함부로 꺾지 않았다. 벌레도 함부로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했다. 여름날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날벌레들이 날아와서 그 램프에 타고 책상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 보다는 차라리 무더운 여름이지만 창문을 닫고 답답한 공기를 호흡할지언정 나는 작은 날벌레라도 함부로 죽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자비관慈悲觀이에요. 나 자신보다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자비심慈悲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불교를 믿는 우리 불자들이 그러한 삶의 자세와 행동을 갖지 못한다면 될 일이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내는 것이 곧 불심佛心이고 그런 마음자세를 갖는 것이 바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모습일 것입니다. 지혜로운 불자가 되는 길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온통 다 번거롭게 보입니다. 반면,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세상 또한 맑고 깨끗해 질것입니다. 또 가까운 이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좋아하고 가까운 이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함께 힘들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이며, 스스로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또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이 세상이치인데, 중생심衆生心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기에만 집착執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자가 겪고 있는 행복과 불행, 기쁨과 즐거움, 고통과 괴로움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며, 자승자박自繩自縛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 곳에만 집착을 하고 거기에만 온통 정신이 매몰되어 결국에는 일을 그르치고 마는 것이 중생들의 삶이요. 인생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불자라면 한 곳에만 집착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이라고 했듯이,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변별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까이 지내는 이가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듯이, 항상 그러한 마음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기쁨과 즐거움,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무지함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번뇌煩惱가 동반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마음속의 번뇌는 결국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삶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그 삶이 바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입니다. 삼귀의三歸依, 오계五戒, 보살계菩薩戒, 비구계比丘戒, 비구니계比丘尼戒와 같은 견고한 그릇을 가지고 그 바탕 위에 반야지혜般若智慧를 드러내면, 마치 해가 동천에 솟아나면 어둠이 스스럼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도 맑고 깨끗한 마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고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만큼 산분들에게 물어보면 대다수가 괴롭다고 대답합니다. 어떤 이는 괴로워서 못살겠다고 합니다. 괴로워 못 살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왜 사람들은 매일 매일을 고통과 괴로움 속에 내몰려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탐진치 삼독이라는 번뇌로 인해서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의 오욕락五欲樂이라는 망상이 죽 끓듯 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정혜 삼학을 지니게 되면 번뇌망상煩惱妄想을 여의게 되고 번뇌망상이 끊어지게 되면 고통과 괴로움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세상을 들여다보면 현상에 매여서 사는 우리들의 인생은 전부가 고통과 괴로움으로 범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탐진치 삼독이라면, 그것이 타고 있다면, 타고 있는 그 불을 끄면 됩니다. 타던 불만 꺼지면 끓던 물은 잠잠해 집니다. 타는 불을 꺼트리는 방법은 결국 계정혜 삼학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지요. 모든 얽매임이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전도몽상顚倒夢想으로 드러나는 공포를 다 여의게 되고 헛된 삶으로 끄달리는 그릇된 집착이나 속박으로부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신심이라는 생명력을 가진 이가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좋은 벗을 가까이 함이요, 둘째는 성내는 마음을 끊음이요, 셋째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름이요, 넷째는 연민憐愍의 정을 일으킴이요, 다섯째는 부지런히 정진하는 일이니라.” 보리심은 자기의 본심인 참마음을 의미합니다. 참마음을 지니고 있고 참마음을 일으키는 이는 좋은 벗을 가까이할 수 있고, 성냄을 끊을 수 있으며,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연민의 정을 일으키며, 진지한 자세로 부지런히 정진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월초파일을 준비하면서 더 특별하게 기도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 기간 동안 각자의 수행과 정진을 통해서 스스럼없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기의 본분을 잊지 않는 지혜로운 불자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월간불광 2012년 5월 (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