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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정진하는 것이 덕숭가풍
행복하고 싶다면 참선수행을 하라"
하안거 해제 날, 덕숭총림 설정 선사 만나다
“자성과 쇄신? 난, 그런 말 자체가 창피스럽다”
한국불교의 선맥이 가물가물 스러져 가던 조선 말,
혜성처럼 나타나 한국 선을 우뚝 일으켜 세운 경허 선사와 그 법을 이은 만공 선사의 향훈이 짙게 깃든 곳, 덕숭산 덕숭총림 수덕사. 하안거를 며칠 앞둔 8월 29일 덕숭산 수덕사를 찾았다.
때마침 태풍 볼라벤도 한반도를 벗어나 거짓말처럼 덕숭산과 하늘은 청명했다.
덕숭산을 찾은 것은 하안거 해제를 맞아 경허 만공의 선맥을 잇고, 나아가 그 선풍의 선양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덕숭총림 방장 설정 선사에게 혼탁한 세상을 헤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청량한 지혜를 묻기 위해서다. 더구나 설정 선사는 지난 세 달 동안 하안거를 통해 두문불출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으니,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나오는 덕화와 그 힘이 남다를 것일 터였다.
단도직입을 즐겨하는 선문의 가풍에 걸맞게 시작부터 거침없이 묻고 그 답을 듣기로 했다. 본디 기자란 선지식을 친견하기 어려운 세상 사람들을 위해 대신 만나 그 답을 구해 전하는 임무도 가진 것이니, 머뭇거릴 이유도 없을 것이다. 또 이곳은 예로부터 격식보다는 아름다운 파격의 가풍을 드날린 덕숭가풍의 본향이 아니던가.
“무척 더운 여름에 건강하셨는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는데, 다들 편안하셨기를 바란다. 모든 분들에게 위안의 말씀 드리고 싶다. 먼길을 마다않고 이곳까지 온 것에 감사드린다. 다 알다시피 조선조 5백년은 불교가 심하게 탄압 받았던 시기이다. 불교가 쇠퇴를 거듭하면서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구한말 절에서는 활발발한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선의 맥이 사실상 끊긴 시기였다. 경허 선사로 인해 비로소 선이 다시 중흥되었다. 현재의 모든 선은 경허 선사의 틀에 의해서 마련된 것이다. 경허 선사는 많은 사찰을 돌면서 선을 중흥시켰다. 또 훌륭한 제자들은 두었다. 수월, 혜월, 만공, 한암 등 6인의 제자와 함께 남전, 성월 등 당대의 선지식들을 모두 지도했다. 본래 덕숭산에 주석했던 분은 혜월 선사였는데, 나무를 벤 것 때문에 당국의 조사가 심해지자 절을 떠났고 만공 선사가 이후 주석하게 된 것이다. 만공 선사가 주석한 이후 공부하는 분들이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이곳에 능인선원 등 선방이 개설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선학원을 만들고, 왜색불교를 청산하는 중심역할을 담당했다. 이 능인선원은 그래서 선학원 소속으로 되어 있다. 만공 선사의 제자들은 일제강점기에 단 한 사람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심한 탄압을 받았다. 460명의 비구승을 중심으로 대처와 싸운 것이 불교정화운동이다. 그런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 이곳 능인선원이다.”

-수덕사 선원의 이름이 능인이다. 능인선원만의 가풍이 있나?
“우리나라에서 참선 수행하는 분들은 모두 임제의 법손들이고, 화두수행을 한다. 수행방법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덕숭산의 특성이라고 한다면 다른 곳보다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모든 채소나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다 해서 먹고, 남는 것은 큰 절에 주기도 한다. 일을 하며 수행하는 것은 좋은 수행방법이다. 내가 10대 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가야산과 덕숭산에 개심사, 보원사, 수덕사 등이 있었는데, 본래 절 주변의 산은 모두 절의 소유였다. 그러나 이왕직에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서 밭을 개간하고 일궈서 전답을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곡식과 채소를 먹으면서 수행정진을 했다. 그래서 이곳 덕숭산에는 양식을 직접 농사를 지어서 먹고 수행하는 전통이 생겼다. 또한 이곳에서는 수좌들이 자율적으로 수행을 한다. 하루 한 끼(일종식)만 공양을 하는 스님도 있고, 정해진 일과 외에도 각자 자기의 원칙대로 10시간 12시간 넘게 공부하는 분들도 있다.”
-선원의 이름이 능인인데, 어떻게 이번 철에 능인이 탄생하셨나?
“여기 능인선원에 방부를 들이기가 쉽지 않다.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정진력이 있는 분들이 정진하고 있다. 능인의 경지란, 선이 본래 각자 스스로 챙기는 공부라서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사량할래야 사량될 수 없다. 다만 좋은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다. 선이란 분별로 알 수 없는 공부이므로, 표가 나지 않는 공이다. 그러나 일단 선의 맛을 보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이것은 분명하다.”

-요즘 경허 선사가 자신의 무애행을 후회했다는 논문이 발표돼 화제가 되었다. 아마도 이런 논문이 나온 것은 계행이 무너진 현 승가의 서글픈 현실이 경허선사의 무애행에 대한 그릇된 수용에서 비롯됐다는 인식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방장 스님의 견해를 밝혀달라.
“경허선사가 후회했다니, 나는 잘 이해를 못하겠다. 논문을 읽어보지 않아 정확한 답변을 할 수는 없지만, 잘못된 것이다. 경허 선사의 높고 넓은 경지는 보통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다. 어떤 경계를 보더라도 마음의 동요가 없는, 즉 팔풍(八風)에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견성이라고 하는데, 경허선사야 말로 그 경지를 훌쩍 뛰어넘은 분이다. 어떤 상황을 위기로 만들어서 자신의 마음이 동요하는가를 시험을 했던 분이 경허 선사다. 뱀을 몸에 감거사, 모기와 빈대에 물리거나, 문둥병을 앓는 여인을 데리고 함께 밥 먹고 잠을 자는 모습을 보이셨다. 또 한 번은 실상사 인근에 지나다가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이놈들아, 네 자신도 모르는 놈들이 뭣을 한다고 하느냐며 일부러 싸움을 걸어서, 그들에게 얻어맞으면서 이놈들아 경허를 때리지 말고 나를 때리거라고 호통을 치신 분이다. 이것은 중생을 연민하고 자비심을 베푼 것이다. 이런 경계를 범부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경허 선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삼수갑산을 6년을 박난주라는 가짜 이름으로 살았는데, 왜 그랬을까. 화광동진의 삶이다. 입전수수의 삶이 바로 삼수갑산에서 보이신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제와서 경허 선사가 자신의 무애행을 후회했다? 그것은 뒷사람들이 만든 말일 것이다. 대강백 진진응 스님의 곡차를 드시냐는 질문에 대해 다생에 습기가 있어서 그렇다며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경지를 한껏 드러내 진진응 스님이 스스로 감화해 굴복을 한 일이 있었다. 물론 친일행적을 했던 이능화 등에 의해 경허 선사의 평가가 왜곡된 적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능화가 한 번이라도 경허 선사를 제대로 봤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선수행의 좋은 점에 대해 알려 달라.
“이것 밖에 없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사람들은 생각을 쉬어야 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너무 잘못된 데 물들어 있다. 명예 돈, 애욕에 물들어 있다. 특히 중생이 가지고 있는 탐진치만의라는 다섯 가지 오욕으로 물들어 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오만하고, 의심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안 되는 일을 찾아서 들어가는 속성이 있다. 오만을 부리며 방자하게 산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자기만이 아니라 남까지 괴롭힌다. 이것을 쉬게 하는 길은 선외에 없다. 오는 곳도 모르고 가는 곳도 모르면서 왜 이렇게 오만하게 사는가? 잘못된 것을 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선이다. 사람들은 모름지기 복을 지으며 살아야 한다. 덕을 쌓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은 관계적 삶이다. 관계를 정말 잘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관계를 제대로 해야 한다. 정성들여 좋은 관계를 맺는 삶을 살면 좋은 일이 저절로 오게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진정하게 마음을 쉬고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선이고 선의 장점이자 강점이다.”
-한국의 선사들 중 상당수는 한국선문만이 유일하게 정통선맥을 잇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정통선맥이 끊어졌다는 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물론 그런 주장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묻겠다. 일본 선사의 가르침을 받은 스티브 잡스는 선수행으로부터 얻은 영감과 인식으로 세상을 통째로 바꾸었다. 그로 인해 세상은 새로운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통선맥을 잇고 있다는 한국선은 세상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기여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스티브 잡스가 중도를 체득해 실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마도 시절인연이 맞아서 그런 특별한 발명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이 가지고 있는 의미나 진리는 충분히 모든 사람들의 심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어떻게 보면 마음 심자 하나이다. 모든 것이 용심, 즉 마음 씀의 문제이다. 선으로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것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선은 특정인을 위한 수행법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와 행복한 세상은 마음공부로만 실현 가능하다. 진정 선이라는 것은 불교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은 불교의 소유물이 아니다.”
-현재 안거대중이 2천여명으로 알고 있다. 그중에서 중도정견을 확립한 가운데 화두참구를 하는 대중이 많지 않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있는 것으로 들었다. 현재 수좌들 중에 중도정견을 갖추고 화두참구를 하는 분들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팔정도에서 나오는 정견을 가지고 선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서울을 갈 때 막연히 떠나면 안 된다. 가는 방법을 알고 떠나야 한다. 나는 사교입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님 네들은 평생 공부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부처님, 조사, 선지식의 가르침들을 항상 듣고 보고 익혀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반성하고 구경으로 삼는 수행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경전도 읽어야 하고, 조사어록도 읽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서 세상까지도 알아야 한다. 스님네들은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지도자로서, 리더로서 살아갈 수 있다. 과거 모든 부처님과 선사들이 다 그랬다.”
-종단 이야기를 하겠다. 현재 조계종은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변화의 기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자성과 쇄신을 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스님의 견해는?
“요즘 불교계의 모습은 진정으로 부끄럽다. 스님들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안 되어서 그렇다. 스님의 자질이 안 된 사람들이 스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님관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들이 스님이 되어서 결국 이렇게 물의를 일으킨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 하셨다. ‘말세에 비구들이 나의 옷을 입고 도둑질해먹고 산다’고. 스님은 교양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감성과 지성을 담보한 그런 스님이어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해서 푹 녹아서 자기를 가라앉힌 사람이어야 한다. 스님의 유형은 첫째는 아양승, 둘째는 독거승, 셋째 조서승(박쥐같은 중), 넷째는 가사 입은 도적(피가사적) 등이 그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옥재에 해당된다. 지옥재란 지옥의 찌끄러기들이 더러 있다. 그래서 문제다. 종단에서 자성과 쇄신을 한다고들 하는데,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스럽다. 부처님 가르침에 다 있는데, 가르침대로 살면 되는 것인데 무슨 자성과 쇄신을 말하나. 고등종교라면 가르침 안에 다 있는 것이다. 특히 불교는 더 그렇다. 그것을 안 지키면서 자성과 쇄신을 하겠다고 하니까 근본적으로 우리를 부정하고 나오는 것 같아서 영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력과 신심을 가진 이가 스님이다. 스님은 모든 생명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내야 한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심이다. 중은 사인이 아니다. 중이 되는 순간 공인이다. 공심이 결여되면 부정부패는 자연 따라오는 것이다. 공심과 원력과 신심을 고루 가져야 한다. 그러면 자성과 쇄신은 그렇게 말을 하지 않더라도 된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
“대통령 될 사람은 덕을 갖춰야 한다. 편견과 아집, 독선, 이기심을 가진 사람은 안 된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란 전체를 끌어안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이면 모든 것을 거의 이룬 사람일텐데 무엇 때문에 독선을 부리고 이권과 돈을 챙기는지 모르겠다. 멸사보국하는 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안거를 마치고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공부가 다 끝나지 않았으면 빨리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너라.”
-마지막으로 불자들과 국민들에게 귀감이 될 말씀을 해달라.
“사회가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어럽겠지만 항상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세상을 밝게 아름답게 보고 고맙게 생각하고 즐겁게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만족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은?
근현대 한국선풍을 진작시킨 경허 만공 선가의 선맥을 계승한 혜암, 벽초, 원담 스님에 이어 제4대 덕숭총림 방장으로 덕숭산을 찾아 정진하는 모든 납자들을 제접하고 있다. 1955년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5년 혜원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61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강원을 마친 뒤 부산 범어사와 문경 봉암사, 예산 수덕사 등 제방선원에서 반세기 동안 수행정진하였고, 수덕사 주지를 비롯해 제11대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했다. 종회의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봉암사 태고선원과 수덕사 정혜선원 등지에서 한 철도 빠짐없이 방부를 들여 정진을 거듭하며 이사에 두루 자재한 걸림없는 원융무애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2008년 입적한 원담스님의 뒤를 이어 2009년 덕숭총림의 방장으로 추대되었다. 2011년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았고 서울 화계사 조실도 겸하고 있다.
*덕숭총림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 시기에 창건된 백제고찰로, 삼국유사와 속고승전 등에 백제의 고승 혜현이 수덕사에 주석하며 법화경을 지송하고 삼론을 강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 건축된 대웅전과 신라말기 양식을 따른 삼층석탑, 수덕사 출토 고려자기, 와당 등 여러 유물들이 남아 있어 대감람으로 융성했었음을 알 수 있다. 1962년 교구본사로 지정되었고, 1984년 11월 근대선풍을 진작시킨 선지종찰임이 인정되어 총림으로 승격되었다. 50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으며, 총림 내에 정혜사 능인선원, 견성암 비구니 선원 등이 있어 수백의 수좌들이 화두참구에 여념이 없다. 매달 음력 그믐날에는 사부대중이 모여 철야정진을 통한 선수행을 실천하고, 여름철에는 선 실천 수련대회를 갖는 등 선의 생활화와 선풍진작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기사등록 : 12-08-29 15:52 ▣ 이학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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