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사미스님이 들려주는 출가이야기 (종민스님)
    이 름 : 이 보현 등록일 : 201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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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선지식을 찾아서- 열다섯 번째 선재》

★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종민스님

★ 27살 사미스님이 들려주는 출가이야기

불기2558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53선재를 찾아서>는 좀 특별한 인물을 인터뷰했다.
푸른 청춘의 시절을 과감히 수행자의 삶으로 받아들인 종민스님이다.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1층 로비에서 만났을 때 종민스님은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또 스터디를 막 끝냈으면서도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다.
자신의 출가의 변을 들려줄 때 목소리는 낭랑해서 도서관의 높은 천장에 닿았고,
진정한 수행자상을 이야기할 때는 눈을 깊이 내려 깔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표정이었다.
스님과의 인터뷰는 먼저 지면으로 질문내용을 전달한 뒤 직접 만나 이루어졌다.


이미령(이하 포커스):스님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종민스님(이하 종민):네. 저는 사미 종민입니다. 나이는 27세.
그런데 제 본명은 이종민입니다.


포커스:어떻게 법명과 본명이 똑같지요?

종민:은사스님의 뜻입니다. 사회에서 또는 외국에서 스님들이 활동하실 때
법명과 본명이 달라서 혼란을 빚는 모습을 보시고서 법명을 본명 그대로 쓰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저는 미국 Arizona the Orme School을 졸업한 뒤,
2008년 UW Wisconsin 입학에 입학했다가 군입대를 위해 한국에 들어온 뒤,
2010년에 동국대학교 영어통번역학과에 전액장학금을 받는 성적으로 입학했지요.
그러다가 1년 뒤 불교학부로 전과했습니다.
2011년 9월에 대학을 휴학한 뒤 구룡사 정우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입산해서
통도사에서 행자를 지낸 뒤 2012년 사미계를 수지한 사람입니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석림회 법사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또 일산 여래사에서 어린이법회 법사도 겸하고 있습니다.


포커스:늘 스님 한 분을 53선재로 모시고 싶은 생각을 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연이 닿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요즘 불교계는 출가자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젊은 세대보다 중년의 나이에 출가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지요.
그래서 ‘요즘은 행자시절만 지내면 다 큰스님이야’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그런 만큼 20대 출가자인 종민스님을 만나 젊은 출가자의 변(辯)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아주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불교계에서는 스님께 출가의 동기를 여쭙는 것을 삼가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종민스님은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실 수 있겠는지요?

종민:사실 이런 인터뷰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봤습니다. 궁금하신 점들에는 대답을 해드리지요.


포커스:자, 어떤 계기로 출가하시게 되었는지부터 듣고 싶습니다
(분위기를 좀 가볍게 하려고 “혹시 연애에 실패하셔서…?”라고 묻자
종민스님은 크게 웃으면서 “그건 아니에요.”라며 시원하게 대답한다).

종민:출가를 생각하게 된 것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일입니다.
오래전부터…. 전 출가하기 전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요. 기독교교리에도 심취해서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한 뒤에 잠들었습니다.
그러다 군입대를 위해 한국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 와서 명상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들른 그곳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 교리를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어요.


포커스:기독교 사상에 대해서도 심취해 있던 만큼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두 종교를 함께 만날 수 있었겠네요.

종민:예. 그런데요, 기독교 교리가 눈물 날 만큼 감동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나 불교 교리가 한 발자국 앞서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대체 이런 느낌은 뭘까?’ 이게 궁금해서 성경을 열심히 읽었듯이 불교경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마침 명상센터에는 여러 경전들을 비치해뒀는데 그중에서 맛지마 니까야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지요.


포커스:그 많은 경전 가운데 초기경전을 처음으로 만나셨군요.
성경과 다방면으로 비교가 되었겠어요.

종민:성경과 불경 둘 다 비유를 통해 뭔가 말하려는 점은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령 부처님은 비유를 설명함에 있어 논리적이고 조리 있게 풀어나가셨어요.
그 비유가 어떻게 자신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를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고 계셨지요.
성경의 비유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자신의 말은 일반적으로 알아듣기 어렵다며
상세하게 풀어놓지 않았어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비유를 통해서도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불교교리가 아주 명백하게 제게 다가왔지요.


포커스:또 어떤 점에서 비교가 되었나요?

종민:맛지마 니까야는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논리적이어서 이 부분이 성경과 차이 났어요. 성경은 산문형식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핵심을 찾아내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리고 불경을 읽으며 감탄을 하던 중에 명상도 하게 되었는데 명상이 정신적인 차원임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상들이 드러나게 되었지요.
이런 육체적 현상을 경험하고 나서 ‘아, 이게 단순히 마인드 컨트롤 차원인 게 아니라 뭔가 분명히 있는 거구나’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체험한 그런 현상들이 불교경전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는 점에 또다시 놀랐지요. ‘어, 이게 실재하고 있다는 말이네. 정말 신기하다.
’ 이렇게 생각하면서 관심은 더욱 깊어졌고, 불교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확실하게 생겼지요.


포커스:집안 환경이 종교적이었나 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불경이나 성경을 읽고서 이렇게까지 깊이 있는 체험이나 감동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종민:종교적이지는 않았어요. 대신 ‘마음지향적’이었다고나 할까요?
부모님께서 마음관련 수련을 좋아하셨고, 또 아버님이 한의사이셔서 물질적이지 않은 것
그러니까 기(氣), 아바타 대체의학, 명상심리치유 이런 것에 관심이 아주 많으셨어요.
저는 아버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은 것 같고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아버님이셨지요.


포커스:부모님의 성향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부모님의 영향은 엄청나다는 걸 이 53선재 인터뷰를 하는 내내 확인하고 있거든요.
자, 아무튼 스님께서는 어찌되었거나 경전을 통해서 불교를 먼저 만나셨어요.
그런데 초기경전으로 불교와 인연을 맺었는데 대승불교권인 한국의 승가에 출가하셨어요.
초기경전과 대승불교 승가…. 그 화합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종민:맞아요.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대승불교권에서의 여러 모습들에 거부감이 일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49재 같은 것도 처음에는 못마땅했어요. 어쩐지 미신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절에 몸을 담고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도 들어보고 또 신뢰할 만한 도반스님들과 대화를 통해서 그저 눈으로만 보는 것과 달리 49재에는 아주 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스님들보다 신도들이 49재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는 걸 보면서 저들의 안락을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 실제로 존재하는 차원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믿는 마음이 강력하다면 실체를 형성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지금은 오히려 대승불교를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초기불교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반면 대승불교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부드럽고 다정하게 다가가요. 지금은 학교에서 정토학을 전공과목으로 듣고 있는데 매일 아침마다 제가 수행방법으로 택하고 있는 것이 칭명염불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있지요.


포커스:확실히 초기불교는 치밀하고 섬세한데 대승불교는 아름답지요?

종민:예, 예. 맞아요. 그래요. 참 아름답습니다. 사람들 마음을 참으로 잘 끌어당기고 있어요.
저는 이 둘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포커스:다시 출가 이야기로 돌아가 보기로 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경전을 읽지만 그 사람들이 전부 출가하는 건 아니잖아요. 출가자의 삶에 대한 어떤 강력한 동기가 있었던가요?

종민:늘 수도원 생활을 동경해왔어요. 그러다보니 불교를 만나고 공부하던 시절 여자친구가 있었음에도 결혼보다는 수도자의 삶을 더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연애하던 시절, 여자친구와 사소하게 다투다보면 아무리 행복한 사람과 살아간다고 해도 늘 행복하고 평화롭지만은 않겠다는 걸 생각했어요. 그리고 결혼하면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쩌면 애인과 더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행복이란 것의 견고성에 대한 회의가 찾아왔어요. 게다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으리란 생각도 있었고, 바로 그런 점이 제 출가에 강력하게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커스:남을 위해 산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자주 하셨네요.
좀 특이합니다. 그렇다면 출가하기까지 특별히 장애가 되었던 것은 없었나요?

종민:불교를 믿기 이전 기독교를 믿었을 때부터 남을 위해 사는 삶에 늘 관심이 갔었어요.
남에게 헌신하는 삶이 참 좋았어요. 그리고 저는 출가 당시 장애가 하나도 없었어요.
부모님은 늘 저를 믿고 따라주시는 편이어서 오히려 제 결정을 환영하셨지요.
다만 어머님이 좀 힘들어하셨어요. 감성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맏아들이었거든요. 그리고… 어떤 장애가 있었을까요?(종민 스님은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출가하게 된다면 금욕생활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할 수 없고 또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점…?
이런 점들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결혼에 대한 동경은, 제가 연애를 해봤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그에 대한 생각정리가 되었거든요. 오히려 장애라면, 출가하고 난 뒤에 찾아왔어요.
행자로 지내던 시절 정말 힘들었어요.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달라서 울기도 했지요.
실제로 그만 두려고 결심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분을 만나 지금까지 이 삶을 유지해오게 되었지만 말이지요.


포커스:그럼에도 스님은 출가의 삶을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나요?
혹시 주변 친구들에게도 자신 있게 출가를 권하실 수 있나요?

종민:그럼요. 당연하지요. 얼마나 좋은데요.
(종민스님은 이런 질문을 한 내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이 좋은 걸 왜 자꾸 그런 식으로 묻느냐는 표정이다.) 전 젊은이들에게 출가하라고 자신 있게 권하겠습니다.


포커스:그렇다면 말씀해보세요. 출가하면 뭐가 좋은가요?

종민:초기경전 디가니까야에 들어 있지요? 사문과경(沙門果經, samanna phala sutta)이라고….


포커스:예. 아주 유명한 경이지요.

종민:당장 그 경에서 아자타삿투왕과 부처님의 대화가 다 말해주고 있잖아요.
아무리 세속에서 낮은 신분이었고, 왕의 수족 노릇을 했다고 해도 일단 출가하면 그는 더 이상 왕의 부림을 받지 않으며 오히려 왕의 공경을 받는다고 말이지요.
출가한다는 건 사회적으로 최고층으로 올라간다는 말이지요. 위치가 격상되었기 때문에 살펴주시는 분들이 늘 계시게 마련이고 그 분들이 수행자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이 부족하지 않은지 늘 살펴주시고 제공하고 계시지요.
우리가 산다는 건 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부족하지 않게 재산을 모으는 거잖아요.
출가한다는 건 그게 다 마련된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지위나 재산 등 걱정할 일이 전혀 없다는 면에서 아주 행복합니다.


포커스:(혹시 오해를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부연한다면, 스님의 대답은 내게 매우 충격적이었다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경전에 철저하게 부합한 내용이었다.
사실 세속에서는 스님에게 얼마나 지극한가. 종민스님은 바로 그 점을 경전에 의거해서 내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종민:다만, 제일 걱정해야 할 것이 스님 본연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잘 유지하느냐는 문제겠지요. 그중 가장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 같아요. 금욕이란 스프링과 같아서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반항의 힘이 세잖아요. 저는 승가 밖에서의 삶이 행복했다고 느낀 사람이 출가한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세속에서 힘겹게 채우려고 몸부림치던 욕구를 출가해서까지 그대로 이어간다면 너무 힘들 것 아니겠어요?


포커스:혹시 스님은 출가하기에 적당한 연령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종민:(조금도 망설이지 않고)네. 20대 후반이 가장 적당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연애를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해보고 출가하면 호기심이 생겨서 자꾸 생각하게 될 테니까요. 연애를 해봤고 연애에서 더 이상 찾을 게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출가해서는 그다지 휘둘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20대 후반이 출가의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포커스:평소 생각하는 ‘스님상(像)’이 있나요.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종민:출가하던 당시와 지금의 스님상이 좀 차이가 납니다.
출가 전에는 다른 이와 어울려 살지 않고 혼자서 떨어져서 수행하거나 같은 수행자 그룹 안에서만 수행하는 수행자상이 제게는 이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좀 다릅니다.
대중으로부터 떨어진 것이 아니라 대중과 섞여 들어가는 존재. 대중에게 섞여 들어가지만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존재,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한 최대한 도와주는 존재, 이것이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스님상입니다.


포커스:그런 스님상에 부합하는 실제인물이 계신가요? 이를 테면 롤모델이라고나 할까?

종민:석가모니 부처님이시죠. 초기경전에 등장하시는 부처님이 어떤 말씀과 어떤 행동방식과 어떤 마음가짐으로 제자들을 대하고 어루만져주었는지를 보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바로 그런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가 취해야 할 롤모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교교리에 대해 설명할 때도 부처님의 설법 패턴을 그대로 가지고 할 때도 있어요. 제 롤모델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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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민스님은 아주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들었다. 주인공의 종교적 방황에 깊이 공감할 뿐만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이 오랜 방황 끝에 수행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느끼는 바가 컸다는 것이다. 종민스님의 포부는 남다르다. 장차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 세상에 대한 지식을 두루 익혀야 하겠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혜를 기르기 위해 쉬지 않고 정진하겠다고 그는 말한다. 아직은 ‘사미’의 신분인 만큼 “내 수행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는 대답을 예상했지만 그의 말 속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다. 심지어 출가와 재가의 아름다운 조화가 가장 이상적인 불국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단다. 자신은 개성 넘치고 능력 있는 재가자들이 맘껏 부처님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용히 뒤에서 후원해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단다. 하지만 그 생각은 깊다.

“플라톤이 말했지요. ‘이상적인 통치자는 철학자들이다. 왜냐하면 철학자들만이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요.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문지식을 모두 다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고 있다면 그 전문가들과 같이 일을 함에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그런 마음의 눈을 갖추고 싶고 그러려면 아주 열심히 공부해야겠지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불교포커스 독자들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하자 종민스님은 말한다.
“부처님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이고, 행복한 삶인지를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을 텐데 부처님 오신 덕분에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부처님 오신 날, 그저 하루 쉬는 날로 여기기보다는 부처님 오신 본래 뜻을 다시 한 번 새겨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불교를 믿는 것에 자부심도 느끼고 행복을 느끼면서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27살 사미승에게서 출가의 변(辯)을 듣고 문자로 옮기는 것이 어쩌면 좀 두렵기도 하다.
그 치열한 수행자의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재가자가 (이제 막 시작한) 사미승과 어찌 함부로 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난 종민스님의 솔직한 대답이 참 좋았다.
이제 막 문지방을 넘어섰을 뿐이지만 갓 출가한 20대 젊은 수행자의 이 생각과 포부는 날것 그대로이다. 같은 시대 같은 세대들에게는 울림이 크리라 자신한다.

먼 훗날 종민스님은 한국불교 승가에서 어떤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까?
장담하건대, 스님은 세상에 푸른 녹음을 드리우는 큰 나무가 되어 있으리라.
출가하기를 정말 잘 했고, 주변 젊은이들에게 이 좋은 걸 권하고 싶다고 답하는 종민스님.
열다섯번 째 선재는 그야말로 눈 푸르고 정신도 푸른 납자여서 좋았다.

2014.05.06 (불교포커스: 이 미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