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실 앞을 지나며..
    이 름 : 如如華 등록일 : 200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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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실 앞을 지나며 힐끗 보니
그이는 유니폼을 벗고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있었다.
나이 일흔 두 살에 저 경비자리마저 빼앗기고 나면
그의 나머지 인생길은 어쩌면 매우 궁핍할지도 모를 일이다.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을 졸업했고
그는 60년대 말
한국관광공사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서독으로 광부나 간호원들을 파견시키는 일을 담당 했었다고 했다.
그때는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할 만큼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이라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한 유능한 인재들도
서독 광부로 가겠다고 앞 다투어 지원을 했었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는 일인당 칠십 여 만원의 리베이트를 챙겼고 ,매우 풍족하게 살았다.
한때의 화려했던 삶을 그는 자랑처럼 늘어놓곤 했었다.
그런 그가 몇 해 전
노후를 아들에게 얹혀 살 속셈으로 일산 가좌동에 35,00여 평 땅을 매입했고
아들은 그 땅에 공장을 지어 운영했다고 했다.
그러나 느닷없이 i.m.f가 터졌고, 부도가 났고
그리고 그 땅은 헐값에 경매에 부처 졌고...

이듬해 그가 팔아치운 가좌동 땅 값은
신도시 개발로 몇 갑절 치솟았지만
무일푼인 그는 어렵사리 살아가는 아들 내외의 눈초리를 피해
우리 아파트 경비로 취업을 해야만 했다.
언제나 공돈을 좋아했던 그의 버릇은 여전히 남아있어
주민들이 간간히 찔러주는 몇 푼에 마음이 더 쏠려 있었고
언제나 이집 저집 지나친 칭찬과 불만의 말들을
늘어놓곤 해서 주민들 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각종 무단침입자들의 전단지나 정원의 잡초 등 본래의 소임에는
내가 보기에도 늘 태만했다.

왜였을까?
난 왠지 그런 그가 싫지 않았고
아침마다 남편을 지하철역까지 태워주려고 현관을 나서면
대견한 듯이 젊은 우리부부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아버지 같이 느껴지곤 했었다.
실은 나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어제부로 그가 해직 되었다는 걸,
이미 옷을 갈아입었으니 그가 곧 떠나게 되리라는 것도...

요 며칠
경비실 밖을 서성이는 그의 어깨엔 영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문득 문득
가난하던 시절
그에게 줄 리베이트 비용이 없어 해당자에서 밀려나 절망했을
이름 모를 광부와
간호원들의 얼굴이 겹쳐져 보이곤 했다.
그가 힘 있는 자리에 있었을 때
그 힘으로 가난한 그네들을 도와 줄 수 있었더라면
어쩜 오늘 그이의 생활은 훨씬 더 윤택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고...
이제 다 늙어 힘도 없는 그가
일자리마저 잃는다는 사실이 나는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구멍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그러나 경비실 앞에 도착해 보니 그는 벌써 떠났는지 보이지 않고
차곡차곡 정리된 순찰일지위에
누가 두고 갔는지 알 수 없는
야쿠르트 병 서너 개만 덩그라니 놓여 져 있었다.
지금 창밖엔 여우비가 내린다.
경비실 지붕위에도, 내 맘처럼 오락가락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