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봉사 여섯 달도 다 채우지 못하고 툭 하면 결석을 했다. 학교 다닐 때에 단 한 번도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지시를 거슬러 보지 않은 모범생인 내가 불교대학 규칙을 어길 수 있는 용기가 생김은 왜일까? 주방에서 일 잘하던 보살들은 산에서는 신령처럼 날렵하게 오르기도 잘하시고 풀 섶에서 노는 모습은 마치 어린애처럼 천진스러우니.. 아직도 법당에 서면 부처님 마주 뵙기 부끄러운 내가 여래사 16기 친구들에게 새록새록 정이 들어가고 있다.
어느새 가을도 깊어 송추골을 타고 사패산으로 오르는 숲길은 놀빛을 닮아 있었다. 스물 네 명이나 되는 보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에 새들도 놀라 구경길에 나섰는지 재잘이는 보살들 웃음소리만 산을 넘고 바람조차 숨죽이며 안개를 거두어 가지 않았다. 어제 그 숲속엔 온 종일 안개가 덥혀 있었다. 비록 視界는 멀리 트이지 않았지만 이쁜 보살님들 얼굴 그을릴 걱정 없어 좋고 산이 마치 우리들을 감싸 안은 듯 포근해서 좋았던 하루. 배낭이 무겁다고 한마디 투정도 없었는데 막상 산기슭에 자리 펴니 웬 먹거리가 그리도 많이 쏟아져 나오던지... 보살들은 역시 모두 살림꾼들이었다. 쉰 살 먹도록 늘 혼자서만 놀던 내게도 좋은 친구들이 생겼으니 이 기쁨을 무엇으로 대신할까~!
산을 내려오며 남모르게 행복에 겨워했다. 일산에 여래사가 있고 그 속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고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저 기쁘기만 한 이 마음.. 지금 창밖엔 찬비가 내린다. 고운 잎새들이 떨어져 길을 수놓고 있다. 참 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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