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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양다경 님이 작성한 원본 ---------- 중생의 모든 현상이 업에 의하여 지어진다면 선업을 닦는 사람은 잘 살아야할 것이고 악업을 짓는 사람은 못 살아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세상은 악한 사람이 더 잘 살고 착한 사람이 못살게 되는가.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업보를 받는 시기가 다를 뿐 성현도 받는 것은 똑같습니다. 업이 업을 받는 사람에게 내가 그 곳으로 가겠다고 통보하고 오는 것이 업이 아닙니다.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받는 업을 순현보(順現報)라 하고 금생에 지어 내생에 받는 것을 순생보(順生報)라 하며 금생에 지어 내내생에 받는 것을 순후보(順後報)라 하고 언제 받을지 모르는 업을 부정보업(不定報業)이라 합니다. 그렇게 업의 과보가 시간적으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이 나타나지 않는 까닭입니다. 종자는 언제나 구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 종자가 싹을 티울만한 바탕이 나타나지 않으면 않게 되며 설사 종자가 싹이 텄다 하더라도 열매를 지울만한 연이 없으면 도중하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성인도 업보를 받게 된다면 공부한 보람이 없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르고 받는 것은 중생이고, 알고 받는 것은 성인입니다. 모르고 받기 때문에 슬픔이 있고 스릴이 심하나 알고 받기 때문에 고통이 작고 스릴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인연의 묘한 작용을 생각한다면 성인인들 어찌 무릎을 치지 않겠습니까? 단지 중생은 절복(折伏)의 힘이 전혀 없어 지은 그대로를 백퍼센트 받게 되지만, 성인은 중생의 마음을 꿰뚤어 봄으로서 그의 원심(怨心) 보심(報心)을 풀어주므로 다시 원결(怨結) 보결(報結)을 맺지 않고 목하 수족이 될 뿐입니다. 오달(悟達)국사의 자비수참(慈悲水懺)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고, 원각사의 대탑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알고 보면 인류의 모든 역사가 결국은 이 은애보결(恩愛報結)의 주고받는 것 밖에 다른 것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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