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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인터뷰> 통도사 주지 취임 정우스님 통도사 주지 취임 정우스님 (양산=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불교 조계종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로 12일 취임한 정우스님은 "재적승 1천명이 넘는 대사찰인 통도사가 화합의 수행공동체로 자리잡도록 원융살림을 펼치겠으며, 불자와 일반 내방객을 위해 문화가 살아숨쉬는 사찰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ckchung@yna.co.kr (끝) "문화가 살아숨쉬는 사찰로 만들겠습니다" (양산=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통도사를 찾은 내방객들이 마음 편하게 휴식하고 문화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불교 조계종 영축총림 통도사의 제27대 주지로 취임하는 정우(頂宇.55) 스님은 12일 "재적승이 1천명을 넘는 통도사는 불지종가(佛之宗家)의 대찰"이라며 "화합을 근본으로 삼는 승가공동체의 정신을 살려 살림을 꾸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 경남 양산 통도사는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사찰의 하나로 꼽힌다. 정우스님은 이날 진산식(晉山式·취임식)에 앞서 이곳에 부임하자마자 주지실 입구의 `외부인 출입금지` 표지판부터 치웠다. 탐방객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철대문도 하나 둘 뜯어낸 뒤 나무문으로 교체 중이다. 경내지 산림과 하천을 보호하기 위해 수십 년간 쳐놓았던 철조망도 상당부분 철거했고, 꼭 필요한 곳에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녹색 울타리를 치고 있다. 정우스님은 "통도사 주변에는 부산, 울산 등 대도시가 많아 신도는 물론 일반 내방객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 곳"이라며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경내의 장애물부터 먼저 치우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탑이 있는 금강계단(金剛戒壇)도 좀 더 자유롭게 참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우스님에게 통도사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1965년 이곳으로 출가한 그는 1985년 서울 양재동에 통도사 서울포교당인 구룡사를 세워 도심 대사찰로 성장시켰고, 일산 여래사를 비롯해 국내외에 개설한 포교당이 22곳에 이른다. 이처럼 불교계에서 `도심 포교`에 성공한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그는 일반적인 포교활동 외에도 1987년 구룡사에 신시뮤지컬컴퍼니의 전신인 극단 신시를 창단했고, 일산 여래사에 뮤지컬 전용극장 신시씨어터도 운영중이다. 그 뿐 아니라 불교텔레비전의 전무와 사장을 역임했고, 도서출판 일주문과 월간 `붓다`를 발행하고 있는 문화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구룡사를 세우기 전에 조계종 총무원의 사회국장과 교무국장 등을 지냈고, 1990년대에는 종단의 중앙종회 의원을 네 차례나 역임했다. 이러한 이력을 뒤로한 채 그는 객지 생활 20여 년 만에 주지가 되어 통도사로 돌아왔다. "어느 날 컴퓨터로 제 이력을 뽑아보니 A4용지로 두 장이나 되더군요. 어떤 일이든 한 번 빠져들면 며칠 간 밥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을 정도로 몰입하는 성격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 같습니다. 뭔가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몇 년 전부터 관여했던 일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고 있습니다." 정우스님은 "1천7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는 이 땅의 민초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문화를 일궈왔다"면서 "앞으로 이곳 설법전에서 문화행사를 자주 열고, 9월 개산(開山) 행사에는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통도사를 문화가 살아숨쉬는 사찰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통도사 안에 독립된 공간의 승가대 건립을 추진하고, 연구생들이 최소한 영어, 중국어, 일어를 읽는데 불편함이 없을 뿐 아니라 이 가운데 한가지 언어는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해외 포교역량도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적멸보궁 헌다례(獻茶禮)에 이어 국악공연 등 축제형식으로 진산식을 치르는 것에 대해 정우스님은 "방장이었던 월하스님 입적 이후 3년 이상 혼란을 겪었던 통도사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살다 보면 뒷말을 듣는 일이 없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왜 색안경을 끼고 남을 판단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타인의 색안경 너머로 비친 모습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은 어느 시인이 가는 곳마다 자신의 작품을 변명하자 미당 서정주 선생이 `아무개 시인은 영생해야겠다`고 했답니다. 아무리 변명해도 상대의 평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변명하지 않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안정된 마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ckchung@yna.co.kr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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