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 -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책 칼럼니스트 정진하는 사람이 곧 보살 보살이여, 정진 하나만 기억하라 <대지도론>에는 다양한 경과 논의 구절을 들면서 보리살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보살의 정의를 보자면, “아비담에서 말하기를, 보살이란 스스로 깨닫고 다시 남을 깨우쳐 주는 자이며, 반드시 성불하게 되므로 보살이라 한다”라고 말합니다. 보리살타는 ‘보리’와 ‘살타’를 합친 말인데, 보리는 모든 불도를 이르는 말이요, 살타는 중생 혹은 큰마음(大心)이라는 뜻입니다. 부처의 공덕을 모두 다 얻겠노라고 굳게 결심하였는데 그 마음이 웬만해서는 끊어지지도 깨지지도 않는 것이 마치 금강의 산과도 같기 때문에 큰마음이라고 합니다. 또는, ‘보리’는 번뇌(漏)가 다한 사람의 지혜를 가리키는데, 이러한 사람은 지혜에서 생겨나고, 지혜로운 사람의 보호를 받고, 지혜로운 사람이 기르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가 보리살타인지 아닌지 알아내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그에게 다음의 세 가지가 있는가를 살피면 됩니다. 즉, 첫째, 큰 서원을 세운다. 둘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셋째,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는다. 이중에서 큰 서원을 세운다는 것은, 처음으로 발심할 때에 “나는 부처가 되어 모든 이를 구제하겠다”라고 원을 세우면 보살인 것입니다. 모든 이 구제한단 서원과 불퇴전의 마음 일으켜야 그런데 보살이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세 번째 항목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비발치의 마음을 일으키면 보살인 줄 알아야 한다”는 경전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비발치와 ‘정진’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요? 아비발치(avaivartika)는 보통 불퇴전(不退轉)이라고 번역하는데, 물러서지 않다, 무너지지 않는다, 후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보살에게는 물러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무척 중요한 관건이 되는데, 심지어 보살은 물러나는 보살(비발치)과 물러나지 않는 보살(아비발치)의 두 종류로 나뉘기까지 하며, 이중에서 물러나지 않는 보살만이 진정한 보살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 보살이 될 수 있을까요? 딱 한 가지만 염두에 두고 실천하면 됩니다. 그 한 가지란 바로 바르고 곧은 정진입니다. 보살에게 정진을 얼마나 강조하는가는 부처님과 아난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아난아, 그대는 정진을 이야기하는가?”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아, 그대는 정진을 찬탄하는가?” “그렇습니다. 잘 가신 이(善逝)여.”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아난아, 정진을 늘 실천하고 늘 닦고 늘 기억하라.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라.” <대지도론>에는 이밖에도 보살에 대해서 “두 가지 법을 얻는 이가 아비발치보살이니, 두 가지란, 온갖 법이 자기성품이 비었음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과, 모든 생명체를 생각에서 지우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얻으면 아비발치의 경지에 머무는 사람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또한 세 가지 법을 얻어야 하니, 첫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원을 세워 불도를 이루고자 하되 금강과 같아서 흔들리지도 깨지지도 않으며, 둘째는 온갖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뼛속에 사무치는 것이요, 셋째는 반주삼매(般舟三昧)를 얻어서 현재 계시는 모든 부처님을 뵙는 것이니 이런 세 가지를 갖추면 아비발치라 한다”라고 설명합니다(대지도론 제4권). 하지만 구구한 설명은 접어두고 딱 하나만 기억하자면, 그건 바로 '정진' 입니다. 정진! 이 한 가지만을 잊지 않고 실천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보살' 입니다. [불교신문 2841호/ 8월22일자] 정율스님-향심